2021.01.30-2021.02.08 장소: 우란1경

<TEA Dynamics 차의 역학>은 ‘함께 차 마시기’의 식경험 실험으로 10일 동안 총 30회에 걸쳐 60명의 사전 예약 참여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설계된 식경험 안에서 일어나는 참여자들의 행동들을 통해 ‘차 마시기’라는 경험이 가지는 가치, 그중에서도 우리가 함께 만나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나누었던 모든 친밀함과 정서적 교감의 힘을 드러내어 보고자 했습니다. 함께 마시는 일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이었기에 2020년, 갑작스러웠던 판데믹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함께 마시는 일이 위협과 공포가 되어 금지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새로운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상황들 또한 지켜보며 어쩌면 안전한 식사만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던 어떤 갈증을 우리가 분명히 느끼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고, 식사를 같이 할 때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힘’의 실재를 ‘함께 차 마시기’의 경험 속에서 찾아 선명히 해보고자 했습니다.

이 경험 설계를 위해 아래 두 가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를 충족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의 중요한 조건이 설정되었습니다.

조건 1/ TEA

‘차’는 생리적 욕구보다 상위개념의 욕구와 가치를 이야기하기 좋은 음식입니다. 차는 배고픔을 면하는 음식이라기 보다 사람을 만나 관계 맺기를 하기 위해, 혹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즐기기 위한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음식 자체의 물성에 집중되기보다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잘 드러나 음식의 경험 자체, 더 나아가 음식 경험의 사회적·정서적·유희적 역할을 이야기하기 매우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우란문화재단의 소장품이자 이 연구의 중심에 있는 민덕영 작가님의 차탁이 가지는 공예적 가치도 이 연구에서 보려는 차를 매개로 한 경험적 의미 안에서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차’라는 음식은 매우 쉽거나 어려운 음식이라는 인식이 극명히 나뉘는 편이고 (둘이 차를 마시는 경우) 개인의 경험 차이가 크면 둘 중 차를 더 많이 아는 사람에 의해 그 경험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음식입니다. 그래서 이 실험에서는 참여자가 자신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 채, 직접 차의 재료를 준비해 오도록 하고, 두 사람이 각각 준비한 차의 재료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사용하도록 해 서로의 위계는 차단하고 우연의 과정과 결과를 즐기는 방식과 순서만이 존재하도록 했습니다.

조건 2/ TOOL

주전자나 잔과 같이 눈으로 보면 그 용도와 사용법을 쉽게 알 수 있는 명확하고 익숙한 형태의 도구들 대신 처음 보는 낯선 원뿔 형태의 크고 작은 사발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도구의 특징과 용도, 차를 우리고 따라 마시는 일련의 과정과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유도하는 도구로서, ‘먹는 사람’ 대 ‘먹는 사람’의 소통의 매개 역할이 주가 되도록 한 것입니다. 즉, 차가 가지고 있는 음식 자체의 정체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먹는 사람과 둘 사이의 관계를 잘 드러내기 위해 의도된  낯선 도구입니다. 또한, 이 차 도구들은 불편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 불편함은 모든 도구들이 스스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차 마시기를 하는 동안은 테이블 위에 스스로 서 있지 못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 손으로 잡고 있거나 찻물을 걸러 따르려면 두 사람, 즉 세 개의 손 이상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생깁니다. 실제, 실험의 몇몇 회 차에서는 네 개의 손으로도 모자라 두 팔이나 허벅지 사이에 끼우거나 잔과 잔을 엎어두고 그 사이에 사발을 기대어 두기도 하는 장면들이 관찰되었습니다. 이 불편함 또한 차 마시기의 전 과정 동안의 정서적 활성을 물리적인 동작들로 치환해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이 도구들을 이용하며 평소보다 더 많은 움직임과 동작을 취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경험 설계자의 의도대로 유도된 움직임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30회차의 전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통해서 우리는 두 사람의 차 마시는 시간을 빠르게 훑어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기보다 둘 앞에 놓인 도구들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마주 앉아 도구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가리키기도 하면서 심각하게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며 실제로 실행해보면서 벌어지는 상황에 난감해하기도 하고 웃고 즐거워하는 장면들을 통해 차 도구의 역할과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건 3/ SPACE

차 마시기를 통해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친밀감을 느낀다는 의미를 참여자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무의식적,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동작들로 하여금 마치 계속해서 둘 사이를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공간을 설정했습니다. 공간으로 대표되는 두 사람 간의 거리감과 친밀함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근접학(Proxemics)에서 이야기하는 공적인 거리(Public space), 사회적 거리(Social space), 개인적 거리(Personal space) 그리고 친밀함의 거리(Intimate space)를 근거로 두 사람이 차를 마시는 전 과정 속에서 서로의 거리감이 점차 좁혀지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처음 공간으로 들어와 각자의 자리에 앉기 위해 원형 형태로 만들어진 차 선반을 지나야 했는데, 이는 **‘사회적 거리’**에 가까운 3m를 염두하여 설계되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게 되는 테이블의 거리는 1.2m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개인적 거리' 안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우란문화재단의 소장품인 민덕영 작가님의 차탁은 45cm 지름으로 이루어져, 마지막 단계인 **‘친밀한 거리’**로 두 사람의 차 마시기 경험을 마칠 수 있는 마지막 스페이스로 작동합니다. 특히, 설계된 테이블은 두 사람이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뭔가를 함께 먹기에는 좀 멀다고 느껴지는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 때문에 본능적으로 차를 마시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향해 팔을 뻗고 몸을 숙이게 되는 동작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의도된 불편함의 거리가 설정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편안하게 앉은 상태에서는 차 마시기를 할 수 없고, 의식적으로 내 몸을 상대방에게로 향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유도되었습니다.

그 결과, 차를 마시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상체를 숙이는 모습과 팔을 뻗고 두 손을 모두 사용하면서 떨어졌다가 붙었다가 하는 동작들을 통해 마치, 자력이 작용하는 듯한 밀고 당김의 힘을 눈으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참여자 각각의 신체적 특징으로 인해 의자에서 일어나거나 앉은 자리를 떠나는 행동들도 있었지만, 이런 예외적인 행동들조차도 주어진 규칙에서 벗어나면서까지 ‘함께 차 마시기’를 하기 위한 소통과 교감의 의지 표현으로서 저는 오히려 주제를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행동으로 해석했습니다.